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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24 담백한 비극의 그래픽 노블 - 홍콩안마시술소

담백한 비극의 그래픽 노블 - 홍콩안마시술소

우리나라 출판만화 시장이 개판이 나고, 이대로 이 나라의 만화는 끝인가 싶었다.
근데 어느새 보니 웹툰 시장이 흥하고 출판만화까지 차지하는 일이 생겼다.
출판만화시장이 완전히 사라진건 아니지만, 어느새 국내 만화계의 주요조류는 웹툰으로 넘어온 듯 하다.

그러다보니 웹툰 작가 지망생들도 많이 늘어나고, 수준 높은 아마추어 작품들 또한 많이 나오고 있다.
오늘 얘기할 성준 작가의 '홍콩안마시술소'는 그런 뛰어난 작품들 중에 하나다.
작가의 개성 또한 뚜렷하게 드러나는데, 그 개성이 무엇인고 하니 바로 소설적 묘사로 인해 나타나는 뛰어난 이야기 몰입도다.

- 홍콩안마시술소 1화 中 -

우리는 흔히 동그란 말풍선이 칸 곳곳을 차지하는 만화에 익숙하다.
이런 말풍선 구조의 경우에 일반적으로 등장인물은 칸 하나에 대사 하나 치는 식으로 묘사가 된다.
하지만 홍콩안마시술소의 경우에는 등장인물이 주고받는 대사가 수직으로 떨어지며 각자 할당된 공간을 차지한다.
그러면서 이야기의 흐름과 대사를 말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특히 웹툰같은 경우에는 위에서 아래로 죽죽 스크롤해 내려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이야기 몰입도가 올라간다.
생각해보면 출판이 된다 하더라도 이런 점은 장점으로 작용할 것 같기는 하다.

- 홍콩안마시술소 5 & 6화 中 -

매 화 끝마다 주인공 '정민'의 독백과 삽화(?)로 마무리가 된다.
여기서 삽화도 어떤 여운과 소설적 느낌을 내는데 많은 작용을 하지만,
'정민'의 독백들이 앞 뒤 내용을 연결하며 감정이입에 도움을 준다.
5화에서 정민은 독백에서 내일 할 일로 오렌지색 셔츠 사기를 말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6화에서 정민에게 흰색셔츠만 사지 말고 다른 색도 사라고 말하는 '사랑이'에게서
정민의 내일 할 일에 왜 오렌지색 셔츠 사기가 있는지 알 수 있게 되고,
그 내일 할 일들이 '사랑이'로부터 연유한다는 것 또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단순히 조금 감성적인 느낌이 들 뿐인 정민의 독백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사랑이와 정민의 관계에 대한 이해와 함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 홍콩안마시술소 2화 中 -

위 장면은 '사랑이'가 홍콩안마시술소에서 '영업(연애)'를 하기 위해 준비하는 장면이다.
단 두 컷으로 상황의 설명이 된다. 두 컷 사이에서 일어날 일들이 함축되면서 더욱 효과적으로 이야기 전달이 된다.
필자는 여기서 잘 정제된 문장을 보는 기분이었다. 쓸데 없는 수식어 부사같은 것들을 빼고,
철저히 독자가 알아야 할 부분만을 보여주는 정제된 문장.
사실 홍콩안마시술소의 컷과 그림 자체가 그런 느낌이다.
만화적 표현. 그러니까 인물의 움직임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갖가지 장치들이 거의 쓰이지 않는다.
그냥 최소한의 상황인식이 가능한 장치들을 배치할 뿐,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온갖 화려한 표현들로 치장해놓고도 상황을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드는 만화가 있는가 하면,
과연 군더더기 없는 표현들이야말로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최고의 방법이다.

- 홍콩안마시술소 4화 中 -

이런건 뭐라 말해야할지 모르겠는데, 간단하지만 세심하게 신경써서 인물의 심리를 잘 표현한 장면이라고 본다.
정민과 사랑이가 같이 설렁탄에 반주 한 잔 하는 장면인데, 대사 전 후의 장면에서 각 인물의 심리변화를 발의 모양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담백하면서도 확실하게 보여주는 연출이야말로 홍콩안마시술소의 매력.

- 홍콩안마시술소 6화 中 -

이건 그냥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 이 작품의 썸네일 이미지가 이 장면인 것을 보면 작가도 이 장면을 꽤나 좋아하는 듯 하다.
포스팅 첫 머리에 홍콩안마시술소의 개성이 소설적 묘사라고 했다.
이는 문장과 문장이 연결되면서 독자의 머리 속에서 완성되는 이야기의 감정선.
그리고 문장과 장면들이 독자의 머리 속에서 연결되면서 비로소 비극이 완성되는 홍콩안마시술소의 감정선.
바로 이런게 이 작품에서 소설적 묘사가 느껴지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 홍콩안마시술소 0화 中 인트로 -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바로 위의 화별 인트로 이미지다. 0화는 프롤로그같은 느낌이라 '당신들의 밤 우리들의 낮'이라고
써있지만, 실제로 1화부터는 당신들의 밤과 우리들의 낮이 번갈아 나온다. 홍콩안마시술소의 낮밤을 교대로 보여주면서
이야기 진행을 한 것. 이게 또 생각보다 좋은 효과를 낸다.
두 관점을 번갈아보면서 독자에게 더 큰 궁금증과 기대감을 안겨주는 것 같다.

홍콩안마시술소의 이야기는 비극이다. 하지만 특유의 담백한 연출이 비극으로부터 한발짝 떨어져서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이야기가 되지는 않지만 각 화별로 잘 연결된 이야기 구조가 마음속에 오래 남아
강한 진동을 울리는 점에 있어서 큰 매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작품은 몇년전에 작가가 업로드하다가 중간에 중지한 작품이다. 그래서 적잖은 아쉬움이 남아있었는데,
얼마전에 다시 업로드되는 것을 보고 매우 반가웠다. 몇일전에 기존 연재분 모두 업로드가 되었다.
설마 이대로 또 중단은 아니겠지...그렇다 하더라도 실망하기보다는 계속 기대를 할 생각이다.
아무리 웹툰시장이 커졌다 하더라도 아마추어 작가들의 삶의 기반이 단단하지 않기 때문에 생활에 치이기 쉽기 때문이다.
성준 작가와 같은 이들에게 마음으로나마 응원을 보낸다.

보러가기 : http://cartoon.media.daum.net/league/view/1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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