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 없는 스파이 스릴러의 멋스러움 -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원래는 존 르 카레의 원작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유통기한이 짧은)공짜 영화표의 행운이 생겨서 그냥 급하게 휘휘 가서 보고 왔습니다. 존 르 카레의 소설은 전에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를 본 적이 있었는데, 이야기도 그렇고 문장 자체도 좀 간결한 느낌이었죠. 물론 문장이 간결하다는 생각이 든 건 좀 불확실한게 번역판으로 본거니까...온전하게 알 수는 없잖아요 ㅋㅋ 어쨌든 꽤 재미있게 본 터라 소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랑 영화쪽 둘 다 주목하고 있었죠. 어쨌거나 연작이라고 하니...


 '추운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연속되는 이야기입니다. 본격적으로 이어지는건 아니고 등장인물간의 연계가 된달까...그리고 '죽은자에게서 걸려온 전화'라는 작품도 함께 나가는 이야기죠. 순서는 '죽은자...' -> '추운나라...' -> '팅커, 테일러...'순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순서대로 볼 걸 그랬군요.


영화자체는 좀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중반에는 좀 딴생각도 나고 그랬거든요. 요즘 영화들을 장면전환 같은 것들이 빠르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수도 있죠. 더군다나 '스파이 스릴러'라니, 왠지 그야말로 폼나는 액션이라도 보여줄 것 같지 않습니까? 추격전, 총격전, 육탄적 뭐 그런 것들 말입니다. 그런데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는...아, 제목이 너무 길군요. TTSS라고 합시다. 여튼 TTSS는 그런 액션이 하나도 없습니다. 외려 주인공인 조지 스마일리(게리 올드만)는 중장년의 언저리에 있는, 육체적으로 후달리는 나이대를 보여주죠.



게리올드만, 아 이 양반 이때는 정말 날라다닐 것만 같았는데...



예전 모습을 생각하면 어떤 면에선 충격과 공포라고 할 수 있는, 그의 현재...물론 배역에 맞게 더 늙어보이게 한 것일수도 있겠습니다만 저 주름들은 ㅠㅠ


이야기는 뛰어다니는 것 보단 스마일리가 사건을 맡고 조사를 하면서 생겨나는 의식의 흐름과 그에 따른 과거회상을 따라가는 것을 택하죠. 주로 인물과 인물간의 대화, 그 와중에 나타나는 인물의 표정과 반응 뭐 그런 것들입니다. 누가 이중첩자인지 치열하게 생각하는거죠. 어쩌면 이 치열한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는걸 표현하려고 해서 영화를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은 이해가 안되면 앞장부터 글자 하나하나 차분하게 다시 읽으면 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미니 시리즈도 있다는데 그건 또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적이고, 또 그러다보니 좀 지루한 감이 있고, 따라가기가 어려운 단점이 있는 반면에 장점이라 할 만한 이야기와 캐스팅은 조금 불투명하게 느껴지더군요. 그렇지만 한 가지 뚜렷한 장점이 있었으니, 정적으로 담아내는 그 화면과 낮게 깔리는 소리들이 묘한 멋스러움을 자아내는 거였죠.



영화 스틸컷들. 특히 저 방음벽으로 된 회의실 장면들이 좋더군요.
배우때문인지 저 방음벽 회의실 때문인지...?


이야기 자체가 인물 중심적으로 돌아가서 장면도 왠지 인물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감독이 인물을 잡아내는데 공을 들여낸건지 3번째와 마지막 사진같은 화면들이 자주 나오는 편입니다. 하지만 조금 살펴보면 인물의 주변에 있는 것들 - 장소 자체나 어떤 물건들이 배치되어 있는 것 - 이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적재적소에 자리한 물건들과 그 장소에 어울리는 인물들, 그리고 영화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조금 칙칙한 색감의 화면. 이런 것들이 모여서 어떤 하나의 '멋'을 연출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영화 초반에 뜨는 자막을 보니 제작참여에 원작자 존 르 카레도 있던데, 그가 이런 것들에 관여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는 실제 본인의 영국 정보국에서 스파이로 일했고 또 그 경험을 기반으로 소설을 썼다고도 하니까요.


TTSS는 저도 꽤 지루하게 보기는 했지만, 소장하고 싶은 영화이기도 합니다. 어떤 블록버스터같은 영화들에 으레 따라붙는 '재미의 폭발'은 없지만 언제고 꺼내서 다시 돌려보면서 곱씹고 싶은 느낌이랄까요. 아직 소설 원작을 읽어보지 않았지만 감독의 각색도 꽤 신경쓴 느낌이 있다고 하니...(듀나님의 평에 의하면 묘사되는 일들의 흐름의 순서 자체가 좀 바뀌었다고 합니다.) 뭐 그에 대한 판단을 원작을 읽어본 후에 얘기해보도록 하죠.


바로 이 책 말입니다.


여담1 : 영화관에서 봤는데 자막이 별로 안 와닿는 것 같더군요. 번역자분께서 수고해주시긴 했지만...뭐랄까 바른생활적인 번역이 느껴졌습니다.


여담2 : TTSS를 보는데, 간혹 갑자기 타짜가 생각나더군요. 타짜 후반에 고니가 혼자가 된 상황의 장면들이랄까...아니면 지하철 역에서 습격당할때의 모습이랄까. 왠지 그 씁쓸한 느낌의 화면들과 TTSS의 장면 몇군데가 비슷한 냄새 - 분위기? - 가 났는데...뭐 어디까지나 제 느낌일 뿐이죠.


아니..이렇게 보니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