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 약속된 첫사랑의 판타지





건축학개론 (2012)

 8.6
감독
이용주
출연
엄태웅한가인이제훈수지조정석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한국 | 118 분 | 2012-03-22



1. 건축학개론 보고 왔습니다. 뭐랄까, '풋풋한' 첫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오밀조밀 잘 모아서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 같더군요. 그러니까 이게 잘 생각해보면 참 진부한 이야기들인데 그걸 어떻게 쪼물쪼물 잘 만져서 진부하지 않게, 어쩌면 참신하게 만들었달까? 뭐 참신하다기보단 재미있지만 말입니다. 어쨌거나 여자주인공 '서연'은 그야말로 '첫사랑 판타지'의 재현이죠. 피아노를 치는 아름다운 음대 여학생, 우연히 같은 수업을 듣고, 우연히 얼마전에 남자주인공의 동네에 이사를 왔고, 같은 버스를 타고 등교를 하며, 같이 듣는 수업의 과제를 하다 친해지는 식의...게다가 친해지고 나서 생겨나는 일들도 '첫사랑'스러운 것들입니다. 어쩌면 첫사랑 클리셰라고 부르는것도 무방하겠네요. 여튼 첫사랑에 눈물 흘려본 성인남자라면 적어도 한 장면 정도는 아련하게 공감이 갈거에요.


2. 뭐 이런저런 자잘한 클리셰들이 합쳐져서 판타지를 만들기도 하지만, 사실 이 판타지를 완성하는 요인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일단 첫번째로는 바로 '스무살, 대학에서 만난 인연'이라는겁니다. 다들 중고등학교때 그런 얘기 많이 듣잖아요. '대학만 가면 예쁜 여자친구 / 잘생긴 남자친구 생긴다'같은 이야기. 물론 그냥 좋은 대학 가라고 하는 이야기지만 말이지만, 이게 속든 안속든 대학에 가면서 누구라도 이상적인 사람과의 만남을 꿈꾸게 되니까요. 실제로는 만남 자체가 없을 수도 있고, 만나고 연애를 할수도 있고 못할수도 있고 그렇지만 누구라도 꿈꾸는 인연. 이거야말로 영화 '건축학개론'이 첫사랑 판타지가 되게 하는 중심축이라 이거죠.


3. 그리고 또 하나, 판타지의 중심축에는 바로 수지가 있습니다. 수지, 오 수지!


아 이게 아닌가...


수지, 곱네요


사실 서연역에는 수지 말고 한명이 더 있죠. 현재를 담당하는 한가인 말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가인으로는 '풋풋한' 첫사랑의 판타지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미모가 워낙에 비현실적이잖아요. 조각같은 외모가 어떻게 풋풋하겠냐 이 말이죠. 모름지기 스무살에 대학에 가서 만나게 되는 이상형이라면 뭔가 순수한 느낌도 있어야 될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수지는 아이돌이긴 하지만 괜찮은 한 수 였죠. 수지의 외모를 보자 하면...이쁘네요. 굉장히 이쁜데, 이상하게도 왠지 잘 찾아보면 주변 어딘가에 있을것만 같은 그런 친숙함, 친밀감이 있단 말입니다. 아 저도 알고 있습니다. 잘 찾아봐도 주변에 수지같은 여자는 없다는 것을...하지만 골자는 이거에요. 한가인의 미모는 어딘가 비현실적인 면이 있다면, 수지의 미모는 현실에 안착해 있다는거죠. 게다가 나이도 어리니 '스무살에 만났던 첫사랑'으로 얼마나 적당합니까? 


4. 앞에서 죽- 첫사랑 판타지 이야기를 하기는 했습니다만, 아쉬운 면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판타지'가 전적으로 남성중심이라는거죠. 남자들한테는 지나간 첫사랑의 추억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여자들한테는 글쎄요...제가 여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긴 해도 딱히 첫사랑의 추억을 자극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남성과 여성의 판타지가 같을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요.


5. 그래서인지 몰라도, 첫사랑 외에 다른 양념을 쳐놨더군요. 그것도 아주 맛깔나는 양념 말입니다.


영화가 끝나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재수생 친구 '납뜩이'


바로 승민의 연애코치가 되어주는 친구 '납뜩이'죠. 비범한 패션감각에서부터 시작해서 연애상담하는 모습, 승민의 슬픔에 공감해주며 위로해주는 모습 하나하나까지 뭐하나 버릴게 없는 모습을 보여주더랍니다. 특히 '키스'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이 친구가 없었다면 건축학개론은 뭔가 심심한 영화가 되어버렸을 겁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현재시점에서도 한번 나와줬으면 했는데 아쉽더군요.


6. 요는 이겁니다. 사실 '건축학개론'은 이야기 자체로 봤을때는 뭐 엄청 새롭고 이런게 없어요. 오히려 드라마 쪽의 낡은 이야기들을 끄집어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 낣은 이야기들을 다시 잘 닦아서 영화적으로다가 이리저리 배치를 한거죠. 그랬더니 아주, 진짜 괜찮은 물건이 나온거구요. 아마 드라마로 썼으면 이렇게까지 재미있지는 않았을거에요. 영화라서 다행입니다.


7. 그러고보니 어린 승민역의 이제훈, 저는 맨 처음에 김수현으로 착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응? 저 친구 이름이 이제훈이었나?' 했는데...그냥 제가 헷갈린거더군요. 근데 눈매가 왠지 류승범같지 않나요? 물론 이제훈이 더 잘생겼고 류승범이 더 멋있지만.




8. 영화를 서울극장에서 봤습니다. 처음 가본건데 되게 좋더군요. 마치 옛날영화에 나오는 구식 극장이랄까...상영관은 복층구조로 되어있고, 스크린도 크고 뭔가 공연도 할 수 있을것 같은 무대도 있구요. 앞으로 다른 멀티플렉스 영화관(CGV, 메가박스 등등...)에서는 이런 만족을 못느끼지 싶습니다.


9. 여튼 재미있습니다 건축학개론. 누가 봐도 좋을 영화구요.


10. 아...심히 외로우신 분은 안보는게 좋을거에요. 멘탈붕괴를 경험할겁니다.